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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by zian지안 2024. 5. 1.

홍성욱

최근에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국내외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과 반론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오염부 방류를 동의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과학적 근거'에 의해 찬성과 반대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화되었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다'라는 주장과 '정화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라는 두 가지의 주장, 이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 모두 과학을 근거로 내세웠다는 것은 우리가 과학적 판단을 가장 공정한 판단의 근거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은 현대사회와 근대 이전 사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이며, 과학적 판단이야 말로 어리석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판단,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 과연 신과 같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걸까요? 한 시대를 주도하는 과학 이론은 항상 후대의 다른 이론에 의해 깨어지는 과정을 반복해 오며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가 현재 '법칙'이라고 믿는 것들이 과연 100년 후에도 법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홍성욱의 STS'는 과학이 언제나 공정하고 옳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과학기술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에 의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적용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젊은 학자가 기존 이론을 깨는 새로운 과학 이론을 주장했을 때, 기존 이론을 통해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명한 과학자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새로운 이론이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힘을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며, 새로운 이론을 과학계가 받아들이기까지 다양한 학자들과의 수많은 논의와 논쟁을 통해서 새로운 이론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은 연구뿐만 아닌 사회적 활동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기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만들어낸 인공지능 기술 논문과 프로그램 소스코드는 공개되어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인프라, 개발자, 더 나아가 우리나 Know-How라고 부르는 연구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암묵지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에  미국만큼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 없이는 기술 또한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STS는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과학기술학을 의미하지만, 홍성욱의 STS는 'Science, Technology, Society'라는 의미로 과학과 기술, 사회를 연결되는 하나의 묶음으로 보고 과학 기술과 사회의 연관성을 폭넓게 바라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과학 없이 기술이 없지만 기술 없이는 과학을 적용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과의 논의, 논쟁, 타협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과학을 빌미로 겪었던 많은 실수들을 되돌아보며 과학은 정확하고 공정하다는 신화에서 벗어나 보다 올바르게 과학기술을 사회가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생각과 논의가 필요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STS의 핵심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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