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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토끼의 아리아 - 곽재식

by zian지안 2020. 5. 6.

곽재식 작가의 글은 SF로 분류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블랙 코미디'이라고 생각합니다. SF라는 장르가 과학과 공상적인 내용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내용 안에서 다양한 비유를 통해 사회 풍자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곽재식 작가의 글은 현실의 부조리를 다루면서도 재치 있는 소재와 내용들로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습니다. 자칫 심각하거나 우울한 내용이 될 수 도 있는 내용을 따뜻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결론으로 끝맺는다고나 할까요?

'토끼의 아리아'는 작가의 여러 소설 집 중 하나입니다. 본업을 두고 활동하면서도 쓴 많은 작품 중에 9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작가 본인은 출판사에서 선정했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단편들이라고 합니다만, 여전히 흥미롭고 유쾌한 글들입니다.

인공 지능 컴퓨터가 스스로 계속 작동하게 된다면?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숲 속의 컴퓨터'. 천재적인 경쟁자를 이길 수 없었던 이인자가 어떻게든 일인자를 능가하려는 노력이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되는 '박승휴 망해라',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기업과 언론의 횡포로 인해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삶을 다룬 이야기인 '토끼의 아리아'. 엉뚱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한 두 동업자가 엉뚱하기 때문에 거둔 작은 성공 이야기 '박흥보 특급'. 사욕을 위해 연구 비용과 연구원을 이용하여 피(血)를 연구한 교수의 이야기를 중의적으로 풍자한 '흡혈귀의 여러 측면'. 짧지만 결말의 의도를 뻔하게 알 수 있는 '빤히 보이는 생각'. 로봇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로봇의 이야기만으로 읽히지 않는 '로봇 복지법 위반'. 작가의 공상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실일 수도 있을법한 '4차원 얼굴', 멸망을 준비하는 인류 '조용하게 퇴장하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이야기들을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됩니다.

곽재식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간혹 그 디테일에 전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정부 지원사업을 받아내기 위한 과정이나, 교수와 대학원생과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 기업의 연구원으로서 겪는 일들과 같은 내용들은 마치 실제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러한 현실성이 글의 설득력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블랙코미디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분히 공상적일 수 있는 SF적 소재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어색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뒤늦게 곽재식 작가에 대해 알게 되어 이제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기 시작하는데, 앞으로 읽은 그의 글들을 한층 더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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