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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by zian지안 2020. 5. 4.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계에 대중들이 주목할만한 신인들이 별로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도 90년대~2000년대에 등단한 나름 중량급 작가들이 '주목할만한 신인' 취급을 받는 기이한 상황까지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장르소설 등의 분야가 활성화되면서 순수문학 쪽으로 젊은 작가들의 입문이 활발하지 못한 점도 하나의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몇 년 사이에 드디어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있는 주목할만한 신인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김초엽 작가는 SF라는 독특한 장르적 형식으로 대중들의 호기심과 문학적 완성도를 둘 다 만족시킨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일견 그의 작품이 SF소설로, 장르 소설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는데 SF의 형식과 소재를 빌려왔을 뿐 작가와 작품의 의도는 순수문학의 그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사실상 2000년대 이후 순수 문학이라는 것이 장르문학과의 그 경계가 계속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형식의 문학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SF의 형식을 빌려왔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그의 작품 안에서 표현하고 있는 SF 장르의 디테일은 실제 SF소설만큼 치밀하고 현실성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공계 출신인 작가의 배경도 한몫할 것이고, 그만큼 작가가 작품의 작은 부분까지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재의 현실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작가는 스스로 의도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선과 주제를 어렵지 않게, 작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쉽게 읽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워프와 웜홀, 냉동 수면이라는 SF적 소재들을 이용하여 일과 성공을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을 다시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과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내 분실'에서는 '업로드된 기억'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주인공의 감정을 보여줍니다. '공생 가설'이나 '감정의 물성'과 같이 독특한 아이디어의 작품들도 매력적입니다.

일반적으로 SF라는 장르와 소재를 이용한 작품들은 선이 굵고 투박한 면이 있는데 비해 김초엽 작가는 SF라는 소재 속에서 과도하거나 거창한 주제의식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주제를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꽤나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에 이렇게 다양한 표현력을 가지는 작가들이 많은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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