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된 사실-이산화

최근 개인적으로 한국 SF문학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한국 SF소설은 해외 SF소설 과보다 장르소설적 특성보다는 순수문학적 특성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 사실이나 사건, 줄거리 위주로 진행되기보다는 SF적 소재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인격적 성장이나, 감정적 고뇌, 사회 부조리의 인식 등 주제의식이 추가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국 SF문학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이산화 작가의 작품집인 '증명된 사실'도 SF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몇 가지 장르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지옥 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 '연약한 두 오목면'처럼 SF적인 주제가 부각되는 작품은 물론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한 줌 먼지 속', '카르멘 엘렉트라, 그녀가 내게 키스를', '2억 년 전에 무리 짓다'과 같이 성장소설의 면모를 보이는 작품, '증명된 사실', '무서운 도마뱀', '우는 물에서 먹을거리를 잡아 돌아오는 잠수부', '공자가 성스러운 새에 대해 말하다'와 같은 판타지의 성격을 보이는 작품 등 다채로운 성격을 가지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품 전반적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투영해 놓은 점이 흥미로운데, 몇몇 작품들은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 속에서 이어지는 연작이라는 점을 작가 스스로 후기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근거를 엄격하게 반영하기보다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상상력 때문에 미스터리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도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이산화 작가가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계속 이어나가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