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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by zian지안 2020. 5. 18.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장강명이라는 작가가 어떤 문학적 배경을 가진 작가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과 같은 작품집 또한 한국 SF소설 읽기의 일환으로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가 기자 출신이고, 인정받는 작가이며, 오히려 SF보다는 순수문학 쪽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에 수록된 작품들 또한 SF의 성격보다는 순수문학적 성격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SF적인 요소들은 소재로서 기능하고, 결국 작품의 주제는 주로 사랑이야기인 문학 말이죠.

사랑 보조제를 통해 사랑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약을 끊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고뇌를 다룬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타인의 감정을 주입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 상황에서 홀로코스트 전범과 감정을 교환하게 된 피해자의 이야기 '알래스카의 하이만',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을 다룬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거대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 '당신은 뜨거운 별에', 마치 르포 기사를 읽듯 흥미진진하게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는 '센서스 코무니스', 천재의 뒤를 잇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후계자들의 배틀로얄 '아스타틴', 여신을 사랑한 음악가의 이야기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신인류는 기존 인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궁금하게 하는 '알골', 한 젊은 부부의 사랑을 다룬 우화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자신보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더 잘 찾을 수 있게 된 시대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데이터 시대의 사랑'까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도 SF적인 요소를 많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아스타틴'과 '알골'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두 작품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데이터 시대의 사랑'과 같은 작품들은 과학과 기술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