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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열하일기 - 박지원

by zian지안 2020. 5. 18.

개인적으로 2020년에는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열하일기'를 통해 그 한 능선을 넘었습니다. 3권으로 이루어진 분량도 분량이지만, 번역된 한자 어휘, 생소한 지명, 인명 등으로 독서의 난도가 높아서 완독 하는데도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록이나 잡록은 집중하여 읽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책 자체는 예전에 구매했으나 오랜 시간 동안 (가상의) 책장에 보관만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고전 읽기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더 오래 보관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고 나서는 왜 열하일기가 고전 명작에 포함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박지원이라는 작가의 매력, 그만의 유쾌함으로 인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열하일기'라는 작품은 18세기, 청나라로 향하는 사신 일행을 따라 연경(북경)과 열하를 여행한 박지원의 여행기를 큰 줄기로 하여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부근, 북경, 열하에 이르는 중국 대륙 북부지역의 유적과 풍습, 생활상들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분량의 방대함도 방대함이지만 박지원이라는 학자의 눈으로 담은 다양한 기록들은 당시의 생활상과 사람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짧은 후기에 담기에는 열하일기의 내용이 너무 많고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담뱃대로 작은 잔을 쓸어서 뒤집고는 큰 사발을 가지고 오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한꺼번에 술을 모두 따라서 단숨에 들이켰다. 뭇 오랑캐들이 서로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모두 경이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다. 아마도 내가 호쾌하게 마시는 것을 씩씩하게 보는 모양이다.

현지의 '오랑캐'들이 주로 가는 술집에 잘못 들어간 연암은 기죽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며 술을 마시면서 현지인들을 놀라게 합니다. 연암의 유쾌하고 인간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그 풍속이 가짜를 만들어서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좋아하고 뒷일은 생각지도 않는다. 예컨대 술을 달고 맑게 하기 위해 재를 집어넣으며, 닭의 무게를 나가게 하기 위해 속에 모래를 채운다든지, 거위와 양을 크게 보이기 위해 뱃속에 바람을 불어넣는다든지, 생선과 고기의 무게를 부풀리려고 물을 넣기도 하고, 천을 짜면서 기름과 분으로 닦기도 하는 따위는 이미 송나라 시절부터 그러했다

... 그때도 지금처럼 중국인들의 가짜 만들기는 유명했나 봅니다.

우리나라 서해 연안인 황해도 장연과 풍천 해변에 고기를 잡는 커다란 중국 배는 모두 각화도에서 온 사람들이다. 해마다 5월 초에 몰려왔다가 7월 초에 돌아가는데, 채취해 가는 물건은 바닷가에서 나는 방풍이라는 한약재와 해삼 등으로, 더러 육지에 올라와 양식을 구걸하기도 한다.

서해 연안에 중국 배들이 무단으로 넘어오는 것도 역사가 꽤 오래된 일인 듯합니다.

당시의 기록들이 보통 격식에 맞게 쓰여있는데 반해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당시의 환경과 생활상을 매우 생동감 있는 필치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때문에 읽다 보면 마치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시 공적인 임무를 가지고 중국으로 향했던 일행과 달리 개인 수행원이라는 신분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연암은 여행지의 곳곳을 직접 찾아가고, 그곳의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이야기하고, 때로는 중국의 선비들을 만나 토론하기도 하면서 여행하였습니다. 심지어 당시의 티베트 판첸라마를 만난 일까지 기록되어있습니다.

또한 기록 곳곳에서 보이는 당시의 제도에 대한 비판의식, 제도 개선을 위한 주장도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당시의 사회 분위기 상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하여 '들은 이야기'라고 기록하긴 했지만, 유명한 '호질'이나 '허생전'과 같은 사회 비판적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 열하일기입니다.

국내에서 제대로 완역한 판본은 돌베개에서 출간한 이 판본이 최근으로 알고 있는데, 여행기에 해당하는 부분은 2권 중반까지의 분량이고, 이후는 개별적인 기록과 잡록들입니다. 여행기만으로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지만 잡록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읽는 내내 유쾌했습니다.

'열하일기'를 다 읽고 보니 책장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없는데 책장에 있는 걸 보니 읽긴 했었나 본데...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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