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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by zian지안 2024. 3. 3.

나혜석

수원시 중심부 번화가에는 '나혜석 거리'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습니다. 수원시에 '박지성 거리'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혜석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수원시 출신 유명한 인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 걸 보면, 과거에 유명한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 나혜석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입니다. 개화기의 혼란한 사회에서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던 나혜석은 국내 최초 여성운동가중의 한 명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시절 '신여성'들이 그렇든 그도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통해 사회적 업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현실의 벽 앞에 그도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이해해 주는 고등교육을 받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게 됩니다. 

그렇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남편이 받은 해외 포상 여행에 동행하면서 1년 8개월에 걸친 지구 한 바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조선에서 중국,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고,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을 두루 여행하고 다양한 경험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깁니다.'

'조선 여성 첫 세계일주기'는 사실 나혜석이 출판한 책은 아닙니다. 여행도중 썼던 글, 인터뷰 내용, 신문에 칼럼으로 기재했던 내용들을 시간의 흐름대로 엮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때문에 여행기 내내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하는 시점마다 묘사의 관점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여성, 더구나 화가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유럽 곳곳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묘사로 자연스럽게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발전한 유럽의 모습을 동경하는 솔직한 감정도 느껴집니다. 나혜석이 어떤 말년은 맞이했는지를 떠올려 보면, 20개월간의 세계여행은 마치 꿈만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객관적인 평론이나 정리된 여행기가 아닌, 개인의 글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성의 일관성이나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읽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백 년 전 극동의 식민지인이 당시로서 가장 발전한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느낄 수 있는 여행기, 나혜석이라는 작가가 동경했던 삶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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