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조선괴담실록

by zian지안 2024. 3. 3.

역사 기록에서 찾아낸 기이한 이야기 - 유정호

문명이 발달하고 정보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UFO와 외계인, 백두산 괴물, 여러 가지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영상매체 등으로 다양하게 전파되어 과거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이야기들을 재미있어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기도 합니다.

현대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과학과 합리적 사고가 현대보다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어떤 기이한 이야기들이 있었을까요? '조선괴담실록'은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된 여러 가지 기이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그런 괴담이 나오게 된 배경과 당시 시대상을 엿보는 책입니다.

일반인들이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조선시대는 과거이기 때문에 미신이나 괴담을 쉽게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선은 유교와 성리학을 국가의 근본정신으로 삼은 국가였고, 성리학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습니다. 유교국가 조선이 이룩한 역사 기록의 집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러한 사상은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가지 기이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어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가장 공신력 있고 합리적인 기록물에 괴담이라니요.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기이한 이야기들은 그 기록의 의도, 실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들일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읽어보는 조선시대의 괴담들은, 귀신이나 외계인과 같이 황당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가진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입니다.  병을 낫게 한다는 소문을 믿고 사체의 일부를 취하는 가난한 사람들. 남존여비 문화로 인해 불합리한 현실을 참아내야 했던 여성들,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고자 사이비 종교를 믿게 된 백성들의 모습들을 통해 당대의 현실과 사회적 모순을 엿보거나, 왕권의 정당성을 위해 왕을 신격화하거나 왕권에 반하는 자들을 벌하는 모습, 백성을 위해 왕이 직접 나서 신비한 일을 행하는 모습등은 괴담이라는 것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었던 당대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됩니다. 또한 때로는 시중의 소문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냉정하게 이해하려고 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며 시대적으로 한계는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국가가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춘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국가였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역사 기록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당시의 기록을 현대의 기준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잣대로는 불합리하고 부족한 의사결정도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죠. '조선괴담실록'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조선의 괴담은, 힘든 현실을 극복해 보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열망이 괴담이라는 비 현실적인 이야기로 표출되어 나름대로의 현실 탈출구를 만든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괴담에 대해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괴담 그 자체가 아니라 괴담이 발생하게 된 사회상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이지만 사이비 종교, 미스터리 등 괴담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괴담이 왜 발생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중요한 것은 괴담 그 자체가 아니라 괴담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고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더 나은 사회로 만들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짜 노동  (4) 2024.03.16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1) 2024.03.03
프랑켄슈타인  (0) 2024.02.19
이상하고 거대한 뜻밖의 질문들  (0) 2024.02.13
모파상 단편선  (1) 20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