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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가짜 노동

by zian지안 2024. 3. 16.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크 옌센

방송에서 소개되어 화제가 된 이후, 너무 인기가 많아 도서관에서 빌리기 힘들었던 '가짜노동'을 겨우겨우 구해서 읽었습니다. 파격적인 주제와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책이었고, 책을 펴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흔히들 이 책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점은, 이 책은 우리가 일을 할 때 놀면서 대충 하고 있다는 내용을 말하는 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책의 주요한 주제는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려 하지만, 우리의 열정을 방해하는 여러 환경과 사회의 묵시적 관습들을 비판하고, 더 나은 노동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와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탄생 이래 노동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재량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심지어 실질적인 일에서 점점 멀어지면서도 노동의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주로 실내에 틀어박혀 앉아서 일하는, 더욱더 추상적이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일을 하느라 결국 더 바빠졌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남는 시간에 만들어낸 수많은 발명품들이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켰던 점을 생각해 보면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입니다.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과거와 동일한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관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증기기관과 공장, 임금노동의 기폭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베버는 그 증거로 초기 자본가이자 가장 진취적이었던 자본가 몇몇이 매우 신앙심 깊은 금욕적 개신교도였던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세속의 쾌락을 거부하고 신을 섬긴가는 추상적 이상으로 자신의 욕구를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속적인 고된 노동에 대한 산업혁명의 필요에 잘 맞아떨어졌다.

다시 말해 산업혁명 이후 노동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종교적 이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검소하고 성실하게 노동을 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의식은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때문에 단지 기술의 발전만 고려한다면 이미 주당 15시간의 노동 생산성을 달성했어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이상적인 노동시간'이라는 이념으로 인해 주당 40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쁜 것이 좋고 필요하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은 가짜 노동을 낳은 합리화 중 하나다. 또 다른 합리화는 계속 일하다 보면 더 많은 자유 시간이 어느 시점에 후식처럼 자동으로 나올 것이라는 관념이다. 아마 태양이 다 타버리기 직전쯤 될 테지만 말이다. 세 번째 의심스러운 합리화는 생산성과 노동시간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는 관념이다. 이런 합리화는 어떤 근거도 없으며, 아마 전적으로 틀렸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효율화는 가속화의 역설을 만들어 내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신기술이 우리를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신기술은 노동을 줄이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입니다.

신기술은 사실상 우리를 점점 더 옭아매왔다. 세탁기로 많은 양의 빨래를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집안일이 더 편해지고 여가시간이 늘어나야 했지만, 실상은 어떤가? 한 달에 한 번 옷을 빠는 대신 매일 빨라야 한다. 마차보다 훨씬 빠른 자동차는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점점 더 먼 거리를 오가게 만들며 운송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했다. 편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한 온라인 이메일 덕분에 시간이 대폭 절약되는 듯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중략)... 가속화에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태도는 결국 노동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노동시간을 줄이기보다는 '가짜 노동'을 만들었습니다. 업무를 보다 더 효율화한다는 명목으로 관리직과 같은 행정 업무를 만들고, 행정업무를 유지시키기 위한 또 다른 일들 (서류 작업, 회의)를 만들고, 근로자는 '일 안 하고 논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 하는 척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가짜 노동을 의뢰한 자와 수행하는 자 사이의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 양쪽 다 이것이 가짜 노동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가짜노동은 기술 발전으로 분명 업무의 속도는 빨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업무 효율성은 제자리걸음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노동 생산성이 산업혁명기의 생산성 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생산성은 크게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근무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산성은 감소하게 됩니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과 근무 시간 사이엔 딱히 강한 상관관계가 없다. 적어도 근무시간이 주 50시간에 가까워질 때는 말이다....(중략)... 50시간 이후에는 부가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63시간 이후에는 완전히 급락하며 생산성의 우물이 말라버린다....(중략) 주당 70시간을 일하면 그중 15시간은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보내게 된다.

결국 노동에 대해 우리가 임하는 신앙적 관념들이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긴 시간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그리고 사회 전체의 노동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가짜 노동을 버리고 진짜 노동을 하기 위한 인식의 변화와 행동을 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과 생산력 사이에 제한된 상관관계를 계속 믿는다. 그에 더해 일이 소명이고 일의 부족은 금기인 문화에서 계속 살기를 고집한다. 우파와 좌파 둘 다 그 신화에 기댄 정치 체제를 지지한다.
지난 30년간, 우파는 실업을 개인이 자초한 고난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해 왔다. 하지만 좌파에게는 일의 본성이 바뀌었음에도 정규직의 권리를 떠들어온 책임이 더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대량의 실직을 일으키며, 근무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가짜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을 대신해 주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일을 계속 찾아 어떻게든 노동 시간을 맞추려고 할 것 같습니다. 노동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우파는 노동을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하며 우리를 실업자로 만들 것이며, 좌파는 노동시간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가짜 노동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정치 이념을 떠나서, 우리 스스로 노동에 대한 관점을 변화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기계를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노동 시간을 줄이며, 남는 시간을 노동이 아니라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잉여 시간'을 문명을 발전시켜 왔던  역사를 되찾아 새로운 문명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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