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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시시콜콜 조선 복지실록

by zian지안 2024. 3. 31.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흔히 '복지'라고 하면 현대 국가에서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지원하는 당양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복지라는 개념이 사회의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세계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의 복지 정책이란 어느 정도의 부가 갖춰지고 안정된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조선시대의 복지'라는 말은 조금 의외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만 깊게 공부해 보면 유교적 가치를 국시로 삼았던 조선이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임을 천명한 조선의 왕들은 인(仁)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물론 조선의 복지 정책은 현대 국가의 복지의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부의 재분배적 성격이 있는 현대의 복지와는 다르게 조선의 복지 정책은 왕과 양반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이 궁핍한 백성에게 제공하는 시혜적 복지의 성격이 더 짙었습니다. 조선의 복지도 시대적 한계는 있었던 것입니다.

'시시콜콜 조선복지 실록'은  조선의 주요한 복지 정책인 '구황정책'과 '취약계층 지원 정책'을 소개하고, 복지 정책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펴봅니다. 농사가 경제의 기반이었던 조선사회에서 흉년, 재해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황정책은 당연히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노인, 아이, 여성,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환과고독)도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은 조선의 민본사상을 정책으로 실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의 왕과 지배층을 이렇게 다양한 복지 정책을 집행하였으나, 시대적 한계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조선의 복지는 보편적 복지라기보다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시혜적 복지 성격일 수밖에 없었고, 조선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열악한 재정 사정으로 인해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복지 정책이었던 환곡 제도가  '삼정의 문란'의 대표적인 비리가 되어버리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선별적 복지제도는 '선별'과정에서 많은 맹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자들을 왜 지원해 주냐', '대상자 선별 과정에서 부정이 있을 것이다', '세금은 내고 복지로 돌려받는 것은 적지 않느냐' 등 수혜적 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만들어 낸 공동체 의식으로 인해 복지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매우 어렵습니다. 

작가는  '혈연, 지연, 학연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제도를 주무르는 권력가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타자를 배 체하고 혐오하는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선별적 복지 제도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의 개입과 비리, 그를 통한 폐해를 되짚어 보며, 우리 사회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복지 국가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옳은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공유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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