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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모파상 단편선

by zian지안 2024. 2. 4.

기 드 모파상 지음, 임미경 옮김, 열린책들

 

열 명의  손님을 태운 마차가 프러시아 군이 점령한 지역을 벗어나 프랑스로 향합니다. 손님들은 돈 많은 상인 부부, 지방유지 부부, 백작 부부, 수녀 둘, 공화파 민주주의자 청년, 그리고 '비계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창녀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프러시아 군 사령관에게 돈을 주고 통행증을 얻어 프러시아 군이 점령한 지역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너무 급하게 출발한 나머지 그들을 먹을 음식조차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을 참으며 계속 이동해야 하는 상황, '비계덩어리'는 품에서 음식을 꺼냅니다. 다들 프랑스 지역으로 이동하는데만 신경 쓸 때 가장 신분이 낮은 뚱보 창녀만이 음식을 챙겼던 것이죠. 신분이 낮은 그녀를 피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조그녀의 비위를 맞추면서 음식을 조금 나누어 받고 신분의 차이를 넘어 조금 친해집니다.

곧이어 가까운 여관에 도착했으나, 이 지역 역시 프러시아 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프러시아군 장교는 '비계덩어리'와 하룻밤을 보내는 조건으로 통과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모두들 장교의 비열함을 입을 모아 성토하지만, 장교가 허락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여관에 발이 묶여있어야 하는 상황. '비계덩어리'는 절대 장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버팁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지만, 일행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불안해집니다. 결국 일행은 그녀가 장교와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결정인지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던 그녀였으나, 수녀들까지 나서서 종교적 대의를 주장하자 결국 일행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장교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약속에 따라 여관을 떠나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람들. 하지만 이제 일행들을 '비계덩어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정신적 고통 때문에 음식도 제대로 싸 오지 못한 그녀에게, 일행은 음식도 나누어 주지 않으며 딴청을 부립니다.


기 드 모파상의 단편 '비계덩어리'의 내용입니다. 모파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목걸이'라는 단편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입니다. 사실 모파상에 대해서는 목걸이라는 단편 외에는 잘 알지 못했고, 그냥 유명한 소설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읽은 하루 10분 인문학에 '비계덩어리' 단편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어 이참에 단편집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모파상은 짧은 생애동안 300여 편의 단편을 썼는데, 열린 책들에서 나온 단편선은 그중 유명한 20편 정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걸이'를 읽으면서는 그저 기발한 아이디어의 소설이라는 생각 정도였는데 '비계덩어리'를 비롯한 단편집을 읽으면서 그가 당시 시대상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소설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비계덩어리의 내용처럼, 겉으로는 부자, 사회 고위층, 성직자라는 가면을 쓰고 고귀한 척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필요할 때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인 창녀의 도움을 받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 창녀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지도층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아이들은 순수함이 없이 아버지 없는 아이를 괴롭히고(시몽의 아빠), 사회 지도층도 금전적 이익 앞에서는 뭐든 받아줄 수 있으며(의자갈이 하는 여자), 순박한 시골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시골살이) 우리가 막연히 '예전 사람들은 지금보다는 순박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모파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시 사회상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풍자 소설만 있는 건 아닙니다. 몇몇 작품들은 신비소설, 공포소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같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풍경이나 심리 묘사의 세밀함은 150년 후에 읽는 지금도 마치 당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재미있고, 한 편 한 편 읽은 다음에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해 준 책이었습니다.

열린 책들 외에 다른 단편선에 실린 단편들이나 장편도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기회가 되면, 모파상의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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