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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어른들을 위한 성장기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립반윙클의 신부

by zian지안 2020. 1. 3.

한동안 역사/인문 서적이나 SF소설 위주로 책을 읽다 보니 감성적으로 메마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연말도 되었고, 약간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읽을만한 책을 리디셀렉트에서 찾다가(리디셀렉트를 이용한 뒤로는 시간 날 때마다 셀렉트  도서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두 권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소설 모두 내용이 길지도 않아 부담 없고, 영화화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소설입니다. 

주제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소설이지만 읽게 된 시점이 비슷하기도 하고,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어서 두 작품에 대해 한번에 후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청소년'으로 분류된 만큼 문장이나 내용도 어렵지 않고, 주제도 비교적 명확하게 표현되는 작품입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만큼 재미있게 술술 읽히기도 합니다.

여러 사건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가난과 고통의 현실로 떨어져 버린 열한 살 소녀.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잃어버린 동물을 찾는 전단지를 보고 부잣집 개를 훔쳐서 보상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녀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나름 꼼꼼하게 계획을 노트에 적으면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고, 얼마 후 면밀한 탐방과 조사를 통해 부잣집 개를 훔친 소녀는 마침내 그 뜻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았던 소녀의 계획은 생각지 못한 변수에 삐걱거립니다. 알고 보니 개의 주인은 부자도 아니었고, 개를 숨겨둔 장소에는 수상한 노숙자가 나타나고, 학교 생활은 점점 소홀해집니다. 생각지 못한 현실에 어떻게든 계획을 완성시키려 애써보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가고, 알고 보니 불쌍한 개의 주인에 대한 연민, 자신의 범죄를 다 파악한 듯한 노숙자에 대한 불안감, 그렇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가난한 현실... 복잡한 상황에서 소녀의 고민은 깊어만 갑니다. 소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가는 이러한 복잡한 현실상황 속에서 소녀의 심리를 잘 묘사했으며, '어린아이 다운' 순수함을 기반으로 한 행동과 결론을 통해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어른들에게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순수함을 일깨워 줍니다. 

내게 돈이 필요한 것보다 세상이 내 힘을 필요로 할 때가 더 많으니까
절대로 개를 훔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라도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스물세 살의 계약직 교사 '나나미'. 소심한 성격에 목소리도 작아 사람을 상대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그는 연애 상대조차 SNS를 통해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다는 것도 SNS를 통해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에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런 고민조차도 SNS의 부계정을 통해 이야기할 만큼 현실과 단절된 온라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은 사건으로 급작스럽게 교사직에서 계약이 해지되어 혼란한 도중에 남자 친구로부터 청혼을 받게 되고, 연애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결혼도 손쉽게 수락해 버립니다. 결혼 준비 중 이혼한 부모님으로 인해 초대할 친척이 없자 그는 또다시 SNS에서 만난 '아무로'를 통해 하객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결혼 후 전업 주부로서의 무료한 삶을 살던 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일을 겪게 되고, 마찬가지로 '아무로'를 통해 남편의 뒷조사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남자, 남편의 정부(情婦)의 애인이라는 남자는 나나미를 협박해 강간하려 하고, 나나미는 다시 아무로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뒤 조작되어 나나미는 결국 하루아침에 이혼을 당해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나나미는 방황하다가 또다시 아무로를 통해 이번에는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같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난 '마시로'와 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무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나나미를 커다란 저택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 다시 겪게 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나나미는 또다시 성장하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인 '립반윙클'은 어빙 워싱턴의 동명의 소설이며 작품 내 등장인물의 SNS 계정 닉네임입니다. 낯선 곳에서 잠들었다 깨니 20년이 흘렀다는 원작의 줄거리는 SNS 속에서 살다가 현실이라는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나나미의 모습과 동일해 보기도 하며, 배우이지만 배우가 아닌 양면성을 가진 삶을 살고 있는 '마시로'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있어 보이는' 여러 설정들로 가려져 있지만, 보이기 위한 거짓으로 만들어진 SNS상의 자신의 결코 본래의 자신의 될 수 없으며, SNS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닌 것을, 그리고 결국 현실을 마주해야만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작품을 하나의 후기로 묶게 된 것은 두 작품 모두 현실에서 고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현실세계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잊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마음을 따뜻해지게 해 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살면서 뒤에 남겨놓은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