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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만나다-김시덕

by zian지안 2019. 11. 18.

우리는 항상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역사 전반에 걸쳐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한반도를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기도 하니, 당연히 과거에도 그랬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상식에 대해 '과연 한반도는 언제부터 지정학적 요충지 었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가 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 해양세력인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이야기합니다. 해양 세력인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해양세력을 저지하려는 대륙세력의 요충지로서 한반도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임진왜란이, 단순히 조선과 일본의 세력전쟁이 아닌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구도를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임진왜란의 의미에 있어서는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 왔던 것과 같이 동북아시아의 세력권을 변화시킨 사건이라는 입장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해양세력인 일본의 대륙 진출에 대한 반복적인 도전의 일환이었다는 관점이 조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임진왜란으로부터 시작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이러한 구도를 바탕으로, 작가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중-일 3국의 역사가 아닌 다양한 세력들이 상호 간에 공존/견제하는 구도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 대륙 민족의 대만 진출, 러시아 세력의 남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서양세력의 진출 등 실제 17세기 이후 아시아의 정세는 한-중-일 3국의 역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세력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존 우리의 인식은 중화-소중화로 이어지는 문명과 오랑캐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한-중-일 3국의 역사 이외에는 무심하고 무지한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국제 정세를 이해하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는 시각, 하지만 그러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세계와 접촉과 교류를 시도했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는 향후 어떻게 국제 정세를 대응해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합니다.


고정된 관념에서 받어나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국제 정세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작가의 의견에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대륙과 해양세력의 사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국력이 한반도 세력을 넘어서게 된 것을 15~6세기 정도로 보고 있는데, 사실 한반도는 그 이전부터 지정학적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중화 민족과 유목민족 사이에서 배후지의 역할로 중화민족과 유목민족은 늘 한반도를 껄끄러워했고, 때문에 중화 민족은 한반도 세력을 유목민족을 견제할 수 있는 아군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유목 민족도 마찬가지로 중국을 상대하기 이전에 아군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세력으로 인식했죠. 때문에 한반도는 늘 양 세력의 균형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그러한 구도가 깨어진  사례는 유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몽골(원) 시대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고려는 몽골 세력에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지요.

물론 해양세력인 일본의 국력이 중국도 무시할 수 없이 커진 16세기 이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커 진 것은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국력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까지 조선을 도운 것은 일본의 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후 대항해시대를 거쳐 서양세력의 진출, 러시아의 동진 등 동아시아는 다양한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빠르게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19세기 말 까지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중국보다 힘이 커진 해양세력을 무시했으며 결국 역사적인 수모를 겪어야 했죠. 

그리고 20세기를 거치며 결국 해양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되어 갈라진 한반도는 21세기에 다시금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공산권의 몰락으로 20세기 말 균형이 깨어졌던 정세가 21세기 중국의 부상으로 다시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죠. 200년 만에 대국으로 부활한 대륙세력인 중국, 지난 100년간 세계를 주무른 해양세력 미국의 대립 속에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아군으로 한 새로운 세력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는 아세안, 인도, 오세아니아등 다양한 세력이 상호 영향을 미치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냉전이 마감된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진 한반도, 그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다양한 세력들이 공존하는' 국제 정세에 대해 한 번 더 고민 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