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냉장고의 탄생 - 톰 잭슨

by zian지안 2020. 1. 29.

마천루, 데이터센터, 로켓, 강입자 충돌기, 건조식품... 언듯 관계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냉장(또는 냉동) 설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 인류의 발전과 인구증가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냉장 설비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류 역사 전체를 돌아보았을 때 인류가 냉장설비를 제대로 갖추게 된 것은 길게 봐야 백 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전까지 인류는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고, 이에 반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짓이라며 거부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냉장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더운 날씨에도 부패하지 않은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서 식중독과 같은 질병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이동시킬 수 있게 되어 국가 간의 불균형한 식량 문제도 해결하는, 맬서스 트랩을 깨는 데에 큰 공헌도 하게 됩니다. 냉장과 동일한 원리로 개발된 에어컨은 전 지구 상에서 인류의 활동 범위를 크게 늘려주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수상이었던 리콴유는 적도의 열대 지방에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된 요인중 하나라 에어컨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이제 인류 생활에서 냉동 또는 냉장기술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냉장고를 하나도 아닌 두, 세 개씩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이 에어컨을 보유하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섭취하는 음식 중의 상당수가 냉동식품이며, 육류는 물론 과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식재료는 산지로부터 냉장/냉동되어 일반 가정에까지 전달됩니다.

'냉장고의 탄생'은 단순히 냉장고를 어떻게 발명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닌, '온도'에 도전했던 인류의 역사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국가적인 빙고(氷庫)를 만들어 보관하려고 했던 고대의 기술로부터, 단순히 얼음을 얻기 위함이 아닌 더 낮은 온도를 위해 실험하고 도전했던 사람들, 온도계의 탄생과 열역학의 발전, 얼음을 팔 기 위한 사업으로부터 시작해 얼음을 제조하는 기술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들, 그리고 냉장고의 탄생, 냉장고의 탄생으로 인한 인류 생활 전반의 변화... 책의 제목은 '냉장고의 탄생'이지만 부제를 '온도에 도전한 인류의 역사'로 붙이고 싶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이야기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이 이렇게 온도에 도전한 인류 역사의 산물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것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과학기술과 역사,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보니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쉽게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지만 냉장고라는 좁은 범위가 아닌 현대의 냉장기술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기에는 매우 유익한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