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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심너울

by zian지안 2020. 6. 15.

심너울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건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였습니다. 당시에도 아이디어의 참신함, 개발자 주인공에 대한 묘사에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의 단독 작품집이 나왔다고 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짧은 기간에도 발표한 작품이 꽤 된다고 하는데, 단편집에 수록된 단품은 5편입니다.

'정적'은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공간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사라진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또 어떤 사람들은 적응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주인공도 적응하게 된 사람 중에 하나지요. 그리고 그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한 작품으로, 흔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소리가 있는 세상'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우연히 경의중앙선 백마역에 들어서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지역 전철 노선의 지루할 만큼 긴 배차 시간에 지쳐 마치 지방령처럼 변해 역사(驛舍)를 방황하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주인공의 분투기입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출퇴근의 고달픔을 판타지의 형태로 기발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부터 일상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 버리고 빨리 불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았을 것입니다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머지 날들은 사라져 버리고 금요일만 남게 됩니다. 지루한 일상이 사라져 버리고 금요일만 남아버린 삶은 과연 행복할까요?

'신화의 해방자'는 마법이 사용 가능한 가상의 세계관에서 시작합니다. 일반인으로서의 재능도 별로 없고, 마법 재능도 별로 없는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용(龍)의 세포를 연구하는 기업에 간신히 취업에 성공하지만, 용의 세포가 이식된 쥐를 따로 키우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펙이 좋지는 않지만 운이 좋아 취직한 사회 초년생은 회사의 규정을 지켜야 할지, 비록 실험 재료지만 생명체를 지켜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최고의 가축'은 '신화의 해방자'와 동일한 세계관의 이야기로 '신화의 해방자'에서 언급된 용(龍)이 기업에 세포를 제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용은 이제 기업의 연구 대상이 됩니다. 용은 이렇게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그가 가진 큰 힘으로 다시금 세상을 호령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5편이라는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읽는 내내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고달픔이나 평범한 고민들을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첫 번째 작품집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가 발표할 다른 작품들도 많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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