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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ARM CPU도입이 기대되는 이유

by zian지안 2020. 6. 24.

WWDC 2020에서 애플은 '결국' 자사 PC 라인업인 Mac 시리즈에 ARM CPU를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WWDC 2005에서 PowerPC를 버리고 Intel CPU를 도입하기로 발표한 지 딱 15년 만입니다. 15년 전, 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Intel CPU를 도입하였던 상황을 생각하면 애플의 설욕이라고 할까요.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발표에서 엄청나게 많은 자랑을 늘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애플이 언젠가 Intel CPU를 버릴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만했습니다. 애플은 창업 당시부터 HW와 SW에 있어 늘 독자 규격을 통한 시스템 최적화를 고집했습니다. 90년대 IBM과 함께 PowerPC를 제작하여 성능면에서 Intel을 압도하며 '전문가용 고성능 PC'로의 입지를 확립한 것도 이러한 애플의 고집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PowerPC CPU의 성능 한계와, Intel CPU의 비약적인 성능 향상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해 애플은 결국 Intel CPU를 도입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PowerPC에서 Intel로 전환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의 성공으로 애플은 시가총액이 세계에서 손꼽는 기업이 되었으며, 그에 걸맞은 자본과 기술력을 가지고 직접 CPU를 설계/제조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IBM과 함께 PowerPC를 도입할 때보다도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또한 ARM 아키텍처 자체도 10년 전에는 모바일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저전력-저성능 CPU였지만, 현시점에서는 환경에 따라 x86 CPU와 맞먹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애플이 ARM으로 전환을 발표한 날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ARM집으로 구동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https://www.engadget.com/japan-fugaku-supercomputer-013121699.html) 또한 실제로 애플의 A시리즈 CPU들은 주요 경쟁 모델인 스냅드래곤 라인업에 한참 앞서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벤치마크 결과로만 보면 인텔의 주요 x86 시리즈 CPU에도 크게 밀리지 않은 성능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애플이 결국은 자사에서 제작한 A 시리즈 CPU를 PC 제품에도 적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어왔습니다. A13 Bionic이 발표되었을 때 개인적으로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s://zianlog.tistory.com/entry/PC%EC%8B%9C%EC%9E%A5%EC%97%90-ARM%EA%B3%84%EC%97%B4-CPU%EC%9D%98-%EC%A0%84%EC%84%B1%EC%8B%9C%EB%8C%80%EB%8A%94-%EC%98%AC-%EA%B2%83%EC%9D%B8%EA%B0%80

 

PC시장에 ARM계열 CPU의 전성시대는 올 것인가?

아이폰 11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아이폰 11에 A13 Bionic CPU의 벤치 결과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https://www.anandtech.com/show/14892/the-apple-iphone-11-pro-and-max-review/13 The Apple iPhone 11, 11 Pro &..

zianlog.tistory.com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ARM CPU를 적용하기 위한 시도는 애플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Microsoft는 Surface Pro X, 삼성은 갤럭시 북 S 모델에 ARM CPU를 적용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ARM CPU의 도입이라는 시점만 본다면 경쟁사보다 약간 늦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ARM CPU로의 전환이 기대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독자 제작한 A시리즈 CPU의 성능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애플은 자사 제품에만 적용하기 위해 CPU를 제조하고 있고, 때문에 애플의 CPU는 범용성을 위해 일부 성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타사 CPU에 비해 HW면에서나 SW면에서 모두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확한 성능은 실제 제품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WWDC 2020의 시연 모습을 보면 CPU 연산이 많이 필요한 작업에서 인텔이나 AMD의 하이엔드급 CPU에 밀리지 않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https://hothardware.com/

두 번째는 애플 기기만의 독자적인 사용 환경입니다. 애플은 자사 기기의 사용 환경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iOS나 iPad OS의 경우 OS 버전이 애플에 의해 직접적으로 업데이트되고, 때문에 업데이트 버전이 사용 중인 기기들에 적용되는 기간도 안드로이드에 비해 짧습니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제조사들을 통해 업데이트가 되기 때문에 기기별로 적용되는 시점이나 환경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애플의 기기들은 짧은 기간에 대부분 동일한 사용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Mac OS도 마찬가지입니다. Mac OS는 버전업이 되면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들이 호환이 안된다거나,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Windows 10에서도 32bit OS를 지원하는데 반해 Mac OS의 경우 이미 2006년에 발표한 10.5 레오파드부터 64bit OS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ARM용 윈도우의 경우 Native ARM 프로그램이 아니면 현재 에뮬레이션을 통해 32bit x86 프로그램만 동작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애플은 '로제타2'를 통해 기존 프로그램을 대부분 에뮬레이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는 개발자들이 ARM용으로 프로그램을 전환하기 편리하게 만들 것이고, Windows환경보다 빠르게 ARM 환경으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부가적으로 아이폰, 아이패드, Mac 모두 동일한 CPU를 사용하게 되면서 애플 입장에서 HW제조 단가를 줄이고 SW를 더욱 최적화하여 최종적으로 모바일-PC에 이르는 (MS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OS까지 통합하는 환경을 그려볼 수 있겠습니다.

빌 게이츠는 늘 모바일-PC OS통합을 이야기 했습니다

세 번째는 애플의 정책입니다. 애플은 HW나 SW 정책이 전환할 때 기존 환경을 빠르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비록 이번 발표에서는 인텔 계열 기기들을 '수년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존에 애플이 걸어온 행보가 있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된 기사(http://www.itworld.co.kr/news/156164#csidx782e5332e68f907a27331d73b081e74)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미 애플은 PowerPC에서 Intel로 전환할 당시 빠르게 PowerPC기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전력이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애플의 이런 정책은, 오히려 빠르게 생태계가 전환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됩니다. 지원이 빠르게 종료되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프로그램을 ARM용으로 빠르게 변환시켜야 하고, 불과 몇 년만 지나면 사용자들은 ARM Native프로그램들을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Microsoft가 많은 OS 점유율 때문에 기존 레가시 프로그램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현실에 발목 잡혀 있는 동안 애플은 빠르게 새로운 생태계를 선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았을 때, 애플이 본격적으로 ARM환경으로 전환하는 2년 후가 되면 사용자들은 ARM CPU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 '오래가는 배터리'와 '높은 성능', '가벼운 무게'를 가진 맥북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제조사들이 x86호환성에 발목 잡혀 ARM 기기들의 출시를 주저하고, 개발자들도 ARM Native프로그램 개발을 주저하는 사이에 말이죠.

과연 예상처럼 애플이 '차세대 PC'를 선점하여 스마트폰에서 아이폰, 태블릿에서 아이패드처럼 PC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애플의 행보에 위협을 느끼고 경쟁사들이 또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올까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던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